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과정은 부모를 성장시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즉각적으로 반응해주고 돌보는 부모, 예의와 청결 등을 알려주고 좋은 습관을 키워주는 부모가 필요하지요. 아이의 사춘기 시기에는 돌봄보다는 기다려주는 부모로서의 역할 전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금 멀리서 아이를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배경으로서의 부모가 더 중요해집니다. 부모 역할도 아이의 발달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와의 연결고리가 잘 형성이 되더라도 사춘기 아이는 부모의 지나친 관심을 밀어내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자녀의 사춘기 시절에 부모는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할까요?
양육의 목적은 결국 자녀의 건강한 독립이라고 하지요. 아이의 독립을 위해서 필요한 시기가 이때입니다. 아이가 실수하고 부모가 보기에 그건 아닌데 싶은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의 결과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훈육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아이의 선택을 부모가 대신해주지 않아야 진정한 독립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아이도 부모도 각자의 삶이 존재합니다. 아이도 때론 실수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존재인 것이죠. 물론 부모로서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는 건 무척 힘이 듭니다. 부모는 경험이 더 많으니까 대신 미리 다 결정해주어 자녀가 최대한 아무런 실수도 없이 지름길과 꽃길로만 다니길 원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그 길에는 안전하고 편한 길만 있을 뿐 정작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경험들을 쌓을 기회는 없어 보입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자녀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아주 작은 좌절과 실수, 어려움 앞에 쉽게 포기하고 회피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즉,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하는 시기를 놓친 결과이지요.
자녀가 장성해서도 부모의 허락과 의견을 따라야 한다면 여전히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장성한 자녀가 데려온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녀의 선택을 받아들여야 하고 취업이 어려워 보이는 진로를 선택하더라도 부모가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니 막아서도 안 됩니다. 부모가 조언과 권유를 해주지만 최종 선택자는 자녀 자신이어야 하니까요.
초등학생 때부터 의사가 되기 위해 대입을 준비하는 아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스스로 어떠한 계기가 있어서 진로를 준비하는 아이들도 간혹 있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한 아이들이 다수였습니다. 자녀를 위해서, 자녀가 행복이 보장된 삶을 살게 하려는 이유 또는 동기 부여를 위해서 이른 시기부터 입시를 준비시키는 것을 봅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녀의 어린 시절은 관심과 흥미를 관찰하고 자발성을 허용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또한 함께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배려, 존중, 섬김, 리더십, 협력, 양보 등의 가치를 배워야 하는 발달단계이기도 합니다. 먼 미래를 위해 현재의 중요한 배움과 가치를 놓치는 것들이 안타까웠습니다.
바라보는 부모, 기다려주는 부모는 아이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아이가 도움을 청할 때 기꺼이 함께 합니다. 아이의 좌절과 어려움에도 함께 하고요. 선택은 자녀의 몫이지만 부모로서 더더욱 아이에게 지지와 응원, 힘을 보내주어야 하는 때니까요.
사춘기에 들어선 막내아이가 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미루고 늑장을 부리는 아이에게 엄마인 제가 잔소리를 하려 하면 아이는 당당히 말을 합니다.
"엄마. 저도 알고 있어요. 저도 저만의 계획이 다 머릿속에 있어요. 제가 계획한 대로 시간을 체크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아이의 말에 아차 싶은 순간입니다. 아이의 그 말이 약간 섭섭하면서도 자기 의견을 야무지게 말하는 아이가 대견스러워서 한 마디만 하고 나갑니다.
"응. 맞아. 우리 딸은 다 머릿속에 계획이 있지. 맞다. 이제 뭐라 뭐라 안 할게. 딸을 믿으니까."
저녁에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스스로 해낸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줄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다 하지 못한 순간에는 비난이나 추궁이 아니라 해야 할 계획들이 좀 빡빡하지 않았는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우선순위를 정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줄 수도 있지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기 의도와 계획대로 무언가 해보아야 방법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발표를 잘 해야지 리더십, 자발성이 키워지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 결정해보아야 생기는 게 자발성입니다. 부모가 이것저것 미리 하도록 유도하는 것보다는 아이의 관심을 따라가며 아이의 속도에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건강한 거리가 있는 아이들은 여전히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부모에게 다가옵니다. 부모의 경험담을 듣고 싶어 하지요. 선택이 어려운 순간에는 신뢰할 대상을 찾기 마련이지요.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받고 수용 받았던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부모의 의견과 생각을 고려합니다. 자녀들은 아직은 삶의 경험들이 많지는 않기에 시야가 좁을 수 있을 테지요. 이때는 부모의 폭넓은 생각들을 접목하고 고려하면서 선택지를 키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저와 남편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을 때의 눈빛과 표정을 보면 집중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부모인 저도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사춘기 딸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지만 스스로 말할 시간을 주며 기다려주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기다려주고 여유을 두었더니 친구관계, 진로 등의 고민들을 스스로 털어놓더군요. 생각보다 부쩍 자란 아이를 보면서 놀랄 때도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관심도 생겼고요.
자잘한 선택들은 아이 스스로 하되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부모에게 한 번쯤 물어보는 그런 사이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 한국인성교육협회 유지영 강사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과정은 부모를 성장시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즉각적으로 반응해주고 돌보는 부모, 예의와 청결 등을 알려주고 좋은 습관을 키워주는 부모가 필요하지요. 아이의 사춘기 시기에는 돌봄보다는 기다려주는 부모로서의 역할 전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금 멀리서 아이를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배경으로서의 부모가 더 중요해집니다. 부모 역할도 아이의 발달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와의 연결고리가 잘 형성이 되더라도 사춘기 아이는 부모의 지나친 관심을 밀어내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자녀의 사춘기 시절에 부모는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할까요?
양육의 목적은 결국 자녀의 건강한 독립이라고 하지요. 아이의 독립을 위해서 필요한 시기가 이때입니다. 아이가 실수하고 부모가 보기에 그건 아닌데 싶은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의 결과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훈육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아이의 선택을 부모가 대신해주지 않아야 진정한 독립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아이도 부모도 각자의 삶이 존재합니다. 아이도 때론 실수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존재인 것이죠. 물론 부모로서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는 건 무척 힘이 듭니다. 부모는 경험이 더 많으니까 대신 미리 다 결정해주어 자녀가 최대한 아무런 실수도 없이 지름길과 꽃길로만 다니길 원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그 길에는 안전하고 편한 길만 있을 뿐 정작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경험들을 쌓을 기회는 없어 보입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자녀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아주 작은 좌절과 실수, 어려움 앞에 쉽게 포기하고 회피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즉,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하는 시기를 놓친 결과이지요.
자녀가 장성해서도 부모의 허락과 의견을 따라야 한다면 여전히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장성한 자녀가 데려온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녀의 선택을 받아들여야 하고 취업이 어려워 보이는 진로를 선택하더라도 부모가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니 막아서도 안 됩니다. 부모가 조언과 권유를 해주지만 최종 선택자는 자녀 자신이어야 하니까요.
초등학생 때부터 의사가 되기 위해 대입을 준비하는 아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스스로 어떠한 계기가 있어서 진로를 준비하는 아이들도 간혹 있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한 아이들이 다수였습니다. 자녀를 위해서, 자녀가 행복이 보장된 삶을 살게 하려는 이유 또는 동기 부여를 위해서 이른 시기부터 입시를 준비시키는 것을 봅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녀의 어린 시절은 관심과 흥미를 관찰하고 자발성을 허용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또한 함께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배려, 존중, 섬김, 리더십, 협력, 양보 등의 가치를 배워야 하는 발달단계이기도 합니다. 먼 미래를 위해 현재의 중요한 배움과 가치를 놓치는 것들이 안타까웠습니다.
바라보는 부모, 기다려주는 부모는 아이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아이가 도움을 청할 때 기꺼이 함께 합니다. 아이의 좌절과 어려움에도 함께 하고요. 선택은 자녀의 몫이지만 부모로서 더더욱 아이에게 지지와 응원, 힘을 보내주어야 하는 때니까요.
사춘기에 들어선 막내아이가 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미루고 늑장을 부리는 아이에게 엄마인 제가 잔소리를 하려 하면 아이는 당당히 말을 합니다.
"엄마. 저도 알고 있어요. 저도 저만의 계획이 다 머릿속에 있어요. 제가 계획한 대로 시간을 체크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아이의 말에 아차 싶은 순간입니다. 아이의 그 말이 약간 섭섭하면서도 자기 의견을 야무지게 말하는 아이가 대견스러워서 한 마디만 하고 나갑니다.
"응. 맞아. 우리 딸은 다 머릿속에 계획이 있지. 맞다. 이제 뭐라 뭐라 안 할게. 딸을 믿으니까."
저녁에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스스로 해낸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줄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다 하지 못한 순간에는 비난이나 추궁이 아니라 해야 할 계획들이 좀 빡빡하지 않았는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우선순위를 정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줄 수도 있지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기 의도와 계획대로 무언가 해보아야 방법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발표를 잘 해야지 리더십, 자발성이 키워지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 결정해보아야 생기는 게 자발성입니다. 부모가 이것저것 미리 하도록 유도하는 것보다는 아이의 관심을 따라가며 아이의 속도에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건강한 거리가 있는 아이들은 여전히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부모에게 다가옵니다. 부모의 경험담을 듣고 싶어 하지요. 선택이 어려운 순간에는 신뢰할 대상을 찾기 마련이지요.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받고 수용 받았던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부모의 의견과 생각을 고려합니다. 자녀들은 아직은 삶의 경험들이 많지는 않기에 시야가 좁을 수 있을 테지요. 이때는 부모의 폭넓은 생각들을 접목하고 고려하면서 선택지를 키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저와 남편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을 때의 눈빛과 표정을 보면 집중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부모인 저도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사춘기 딸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지만 스스로 말할 시간을 주며 기다려주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기다려주고 여유을 두었더니 친구관계, 진로 등의 고민들을 스스로 털어놓더군요. 생각보다 부쩍 자란 아이를 보면서 놀랄 때도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관심도 생겼고요.
자잘한 선택들은 아이 스스로 하되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부모에게 한 번쯤 물어보는 그런 사이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 한국인성교육협회 유지영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