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아이들을 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애를 쓰고 인정받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아이들 말이지요. 저도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아왔고 첫째였기에 어디가서나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고 싶었었어요. 과거 기억을 떠올리면 시험을 망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부모님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그 생각이 먼저 떠올랐던 기억이 있어요. 밖에서 겪은 속상한 일은 집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부모님이 기뻐하실 일들을 주로 말했었지요. 엘리멘탈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어딘지 겹쳐지는 저와 제가 만났던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미지 출처: 엘리멘탈, 피터 손, 2023,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네이버영화>
영화 엘리멘탈 속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물 종족, 공기 종족, 나무 종족, 흙 종족 등이 함께 살고 있는 마을에 불 종족인 엠버네 가족이 이민을 오게 됩니다. 엘리멘탈 속 주인공 엠버는 가문의 일을 계승하려고 하는 착한 아이의 전형적인 인물로 등장합니다. 순간순간 갑자기 분노가 차오르면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좋은 딸이 되려고 애를 쓰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역부족이 되면서 자책과 죄책감은 커져 갑니다.
우연히 웨이드라는 남자를 만나는데 자유로운 영혼의 그를 보면서 엠버는 궁금해합니다. 친해진 엠버는 웨이드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왜 이렇게 화를 잘 조절하지 못할까?’ 잘하려고 하는데도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 속상했던 엠버였으니까요. 웨이드는 말하지요. ‘나는 그냥 내가 느낀 대로 말하는 것 뿐이야.’ 라고요.
사실 엠버는 자라오면서 부모님의 희생을 봤고 아픔과 상처를 느끼면서 자신이 잘 되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욕구가 컸습니다. 그래서 항상 스스로가 원하는 선택과 삶의 방식, 행복이 아니라 부모님이 원하는 그 무언가가 되고자 애를 썼어요. 엠버는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인생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웨이드는 이해를 못하지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항상 포기하고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조차 마음껏 해보지 못한 엠버에게 그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지금까지 난 네가 강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결국... 넌 두려운 거야.” 라고요. 맞아요. 엠버는 부모님의 기대, 조상 때부터 이어온 틀, 착한 아이라는 박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엠버는 상처를 받고 이렇게 말해요. “네가 뭔데 날 판단해? 널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를 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해?” “난 불이야. 그 이상 다른 것이 될 수 없어. 그게 내 모습이고 내 가족도 그래. 그게 우리의 삶이야.” 단정지으며 박스 속에 자신을 가두는 엠버의 모습이 안타까운 웨이드였지만 어찌할 방법은 없습니다.
영화에서 웨이드에게 불행이 닥치고 엠버는 그제서야 자신의 진짜 속 마음을 아빠에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가게를 하고 싶지 않아요. 그게 아빠 꿈이라는 걸 알지만, 제 꿈은 아니에요. 죄송해요. 전 나쁜 딸이에요.” 엠버는 자기 자신에 대해 부모님을 실망시킨 나쁜 딸이라고 고백합니다.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 딸에게 아빠는 말합니다. “엠버, 이 가게는 결코 꿈이 아니었어. 네가 꿈이었지. 넌 항상 나의 꿈이었어.” 라고요. 엠버는 이제 부모님이 원하는 삶이 아닌 진짜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주변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부모님의 꿈을 쫓아 사는 경우를 봅니다. 부모의 자랑이고 어디 가서나 항상 모범적인 아이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처럼 말이지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기가 진짜 무엇을 좋아하는지, 의사나 교수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떤 의사와 교수가 되고 싶은지조차 말하지 못해요.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해요. 부모의 희생은 고마운 것이지만 그것을 자녀가 보상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성교육에서도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고 자신을 알고 나서 타인과 공동체를 알아가는 것을 지향합니다.
소아정신과 의사 지나영교수는 말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위해 낳았다고요. 아이들이 부모의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범생으로 유명한 대학에 갔지만 제대로 진로를 고민하지 않고 선택한 탓에 방황하는 친구들을 봅니다. 부모님의 바람과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했지만 공부를 할수록 적성에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점점 더 자신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실망할까 봐 진로를 변경하는 것도 망설이지요.
엘리멘탈 영화와 책을 보면서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했고 우리집 삼남매에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은연중에 칭찬을 통해서도 자녀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부모들이 있고 부모의 말과 행동은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니까요. 특히 어린 아이들의 경우 부모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합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선택과 감정을 존중받고 충분히 관심사를 즐길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것, 부모가 결과에 대한 칭찬보다는 과정을 바라보며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아이의 노력과 애씀이라는 과정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아이가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지나치게 집중하며 후회와 자책을 한다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세요.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 배우는 부분이 있음을 일깨워주면 좋겠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좌절과 실패의 경험조차 인생을 놓고 볼 때 하나의 예방주사가 되고 겸손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너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면 엄마, 아빠는 그런 너의 삶과 생각을 응원하고 지지한다고 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 한국인성교육협회 유지영 강사/작가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아이들을 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애를 쓰고 인정받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아이들 말이지요. 저도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아왔고 첫째였기에 어디가서나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고 싶었었어요. 과거 기억을 떠올리면 시험을 망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부모님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그 생각이 먼저 떠올랐던 기억이 있어요. 밖에서 겪은 속상한 일은 집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부모님이 기뻐하실 일들을 주로 말했었지요. 엘리멘탈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어딘지 겹쳐지는 저와 제가 만났던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미지 출처: 엘리멘탈, 피터 손, 2023,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네이버영화>
영화 엘리멘탈 속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물 종족, 공기 종족, 나무 종족, 흙 종족 등이 함께 살고 있는 마을에 불 종족인 엠버네 가족이 이민을 오게 됩니다. 엘리멘탈 속 주인공 엠버는 가문의 일을 계승하려고 하는 착한 아이의 전형적인 인물로 등장합니다. 순간순간 갑자기 분노가 차오르면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좋은 딸이 되려고 애를 쓰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역부족이 되면서 자책과 죄책감은 커져 갑니다.
우연히 웨이드라는 남자를 만나는데 자유로운 영혼의 그를 보면서 엠버는 궁금해합니다. 친해진 엠버는 웨이드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왜 이렇게 화를 잘 조절하지 못할까?’ 잘하려고 하는데도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 속상했던 엠버였으니까요. 웨이드는 말하지요. ‘나는 그냥 내가 느낀 대로 말하는 것 뿐이야.’ 라고요.
사실 엠버는 자라오면서 부모님의 희생을 봤고 아픔과 상처를 느끼면서 자신이 잘 되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욕구가 컸습니다. 그래서 항상 스스로가 원하는 선택과 삶의 방식, 행복이 아니라 부모님이 원하는 그 무언가가 되고자 애를 썼어요. 엠버는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인생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웨이드는 이해를 못하지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항상 포기하고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조차 마음껏 해보지 못한 엠버에게 그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지금까지 난 네가 강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결국... 넌 두려운 거야.” 라고요. 맞아요. 엠버는 부모님의 기대, 조상 때부터 이어온 틀, 착한 아이라는 박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엠버는 상처를 받고 이렇게 말해요. “네가 뭔데 날 판단해? 널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를 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해?” “난 불이야. 그 이상 다른 것이 될 수 없어. 그게 내 모습이고 내 가족도 그래. 그게 우리의 삶이야.” 단정지으며 박스 속에 자신을 가두는 엠버의 모습이 안타까운 웨이드였지만 어찌할 방법은 없습니다.
영화에서 웨이드에게 불행이 닥치고 엠버는 그제서야 자신의 진짜 속 마음을 아빠에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가게를 하고 싶지 않아요. 그게 아빠 꿈이라는 걸 알지만, 제 꿈은 아니에요. 죄송해요. 전 나쁜 딸이에요.” 엠버는 자기 자신에 대해 부모님을 실망시킨 나쁜 딸이라고 고백합니다.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 딸에게 아빠는 말합니다. “엠버, 이 가게는 결코 꿈이 아니었어. 네가 꿈이었지. 넌 항상 나의 꿈이었어.” 라고요. 엠버는 이제 부모님이 원하는 삶이 아닌 진짜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주변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부모님의 꿈을 쫓아 사는 경우를 봅니다. 부모의 자랑이고 어디 가서나 항상 모범적인 아이로 인정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처럼 말이지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기가 진짜 무엇을 좋아하는지, 의사나 교수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떤 의사와 교수가 되고 싶은지조차 말하지 못해요.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해요. 부모의 희생은 고마운 것이지만 그것을 자녀가 보상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성교육에서도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고 자신을 알고 나서 타인과 공동체를 알아가는 것을 지향합니다.
소아정신과 의사 지나영교수는 말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위해 낳았다고요. 아이들이 부모의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범생으로 유명한 대학에 갔지만 제대로 진로를 고민하지 않고 선택한 탓에 방황하는 친구들을 봅니다. 부모님의 바람과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했지만 공부를 할수록 적성에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점점 더 자신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실망할까 봐 진로를 변경하는 것도 망설이지요.
엘리멘탈 영화와 책을 보면서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했고 우리집 삼남매에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은연중에 칭찬을 통해서도 자녀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부모들이 있고 부모의 말과 행동은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니까요. 특히 어린 아이들의 경우 부모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합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선택과 감정을 존중받고 충분히 관심사를 즐길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것, 부모가 결과에 대한 칭찬보다는 과정을 바라보며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아이의 노력과 애씀이라는 과정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아이가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지나치게 집중하며 후회와 자책을 한다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세요.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 배우는 부분이 있음을 일깨워주면 좋겠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좌절과 실패의 경험조차 인생을 놓고 볼 때 하나의 예방주사가 되고 겸손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너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면 엄마, 아빠는 그런 너의 삶과 생각을 응원하고 지지한다고 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쓴이 : 한국인성교육협회 유지영 강사/작가